2014년 5월 6일 화요일

독일 영년 (5.6)







정말 내 안의 깊은 숨기고 싶은 얘기를 했더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그걸 상대방에게서도 듣고, 나도 얘기하고.

2014년 5월 3일 토요일

유스호스텔 컴퓨터에서 기록한 (5.4)

내용을 나중에 이곳에 옮겨놓으면 되겠다.

몹시 피곤하지만 많이 걸어서 밤에 잠이 잘 올 것 같아서 기분 좋다. 설렌다.

시날을 좀 써야겠다.

저녁에 업스트림 컬러를 본 다음에 짜글이를 먹고

조용한 구석 까페에 가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을 생각하니 설렌다.



트윈픽스에서 미스터리가 어떻게 구축됐을까.

무서운 광경들을 연거푸 보여줌으로써 이들에 대한 궁금증이 유발되는 걸까?

피해자 어머니의 광기 어린 모습들, 환영들.

하지만 영준이는 미스터리한 느낌이 이런 영역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까,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궁금증이라고 했다.

설마 그렇게 될까 하는 조마조마함일까?

하지만 이럴 때는 이러이러한 식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기대를 깨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나?

조마조마함, 의외의 순간이 찾아오는 때의 서스펜스..




2014년 5월 2일 금요일

어제 (5.3)



작업을 하려고 컴퓨터실에 왔는데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전화 통화하는 사람이 있어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어떻게 영화를 재밌게 직관적으로 찍을 수 있을까.
 
어제 영상 낙서를 하면서 느낀 게 많았다. 거기에다 오늘 형민이가 편집해온 영상을 보니 더 느낀 점이 많았다.
 
연기도 하고, 즉흥적으로 연출하고, 아이디어를 내놓고,
 
그걸 협동해서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것이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더구나 나와는 전혀 다른 편집 관점으로, 짧은 시간 안에 급하지만 완성도 높게 만들어온
 
영상을 보니 정말 사람은 끊임없이
 
만들고 꼼지락거려야 성과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끄럽던 사람은 이제 전화를 끊었다.
 
이제 시나리오를 쓰려고 하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쓴 거를 프린트해서 전주 가서도 계속 고민해보자.





단편 시나리오는 어쨌든 다음주 전에 끝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과, 소재와 전개 방식의 영화들.
 
잉마르 베리만의 <<늑대의 시간>>을 봤는데
 
스토리나, 천착하는 인간의 마음과
(과거의 여자에 대한 집착, 현재 관계 맺고 있는 사람과의 불화), 부와 예술의 관계,
유혹, 살인 등의 주제가 암시적으로 녹아 있다.



물론 상업영화를 그런 식으로 풀어갈 수는 없겠지만
 
뭔가 이런 영화를 통해 영감을 얻고 동력을 얻는다.



아까 우연히 그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해일이 마을을 뒤덮는 끔찍한 상황의 그림 다음에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분수처럼 나와 부유한 누군가의 정원을 촉촉이 적시는 그림을 붙였다.

그랬더니 묘한 아이러니와 풍자의 느낌이 나왔다.

유사성에 근거한 편집이 아이러니를 유발한다.  



다시 보니 그건 부유한 누군가의 정원이 아니었다.
 
메마른 산에 둘러싸인 드넓은 대지인데, 풀은 거의 없이 드문드문 있다.


하여간 남은 몇 분간 시나리오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내일, 아니 집에 가서 바로 잠을 청한 다음, 잠이 오지 않으면
 
시나리오를 붙들고 물고 늘어지자.




주변에 대한 기대를 점점 저버리게 되지만 (5.2)

이런 때 체념과 허무에 빠지면 별로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다.


안 그러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렇게 마음 먹어버리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진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시간만 흘러가게 된다.


한국에서 또 한 번 사고가 일어났다. 지하철끼리 서로 충돌하는 사고. 170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게 만들고 있다. 국가에 별로 기대를 하지 않은 사람이 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사고가 단순히 몇 명의 부주의에 의해 탄생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나비효과를 일으키듯 일으킨 사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소하지만 함께 사는 누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 마뜩치 않은 기분이 자꾸 든다.

설거지 하지 않고 내팽겨쳐두고 있는 모습.

끼니는 거르고, 군것질로 때우는 모습.

뜨악할 만한 분위기의 기독교 방송을 집안에서 틀어놓는 모습.

인터넷을 혼자만 쓰고 같이 공유한다는 개념이 전혀 서 있지 않은 모습.

꼭 내야 할,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약속인 요플레 대금을 두 달째 내지 않고 있는 모습 등등.

성인임에도 전혀 개념이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전혀 이유도 모르겠고 누나에 대한 실망과 어처구니 없음의 감정만 커져 간다.


하지만 누나가 본 나는 어떨까.

매일 집이나 학교에만 있으면서 집안일을 제때 제때 하지 않는 동생.

매일 자기 자신을 무시하는 듯 보이는 동생.

좋은 학교에 진학했다는 이유만으로 가족들의 기대와 호감을 한몸에 받으며

적지 않은 용돈을 받아가며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무책임한 동생.


그와중에 밤꽃 냄새가 물씬 풍긴다.


존경할 수 있고 무조건적으로 따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누이, 선배, 어른을

모시고 싶다.

내가 막내라서 그런지 그런 분이 곁에 있었으면 한다는 생각을 늘 한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내가 주변 나이 어린 사람들한테 그런 존재인가.

태산 같고 산불 같은 사람.

따뜻한 밥 한 채 지어줄 수 있는 사람.

흐트러짐 없는 사람. 흐트러짐 없이 소 힘줄 같은 끈질김으로 내 할일을 하는 사람.

무한한 창조력으로 끊임없이 꼼지락거리는 사람.





어느 한 가지에 열중하는 남자. 그가 사랑하는 여자, 딸 혹은 아들.

르느와르는 축복 받은 남자다.

그만큼 그림을 사랑하고, 그것 하나에 인생을 맡긴 사람.



톨스토이의 <가정의 행복>을 4장까지 읽었다.

정말 단단한 창작물의 느낌을 전해 받았다.

히치콕의 영화들, <<싸이코>>, <<이창>>, <<현기증>>,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를 보면서

숏바이숏을 하고 싶다.

또한 <가정의 행복>을 읽으면서 밀도 높은 삶의 한 단면을 보게 되었고

그런 충만하고 고양된 삶을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하게 되었다.




한 인간의 밀도 높은 창작물들.


그런 충만한 삶을 나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실현해나가는 것이다.

가능할 수 있도록 신께서 내게 에너지를 주시기를 기도한다.

동시에 나 역시 내 몸을 보살피고 내 몸과 마음이 항상 열정으로 가득할 수 있게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책과 영화와 창작 활동을.


그리고 그들 마음에 큰 상처 남지 않게.

인간의 회복력에 대한 믿음을 꺽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