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30일 수요일

2014년 4월 29일 화요일

(4.30)















집요하게 집요하게 (4.29)

집요하게 먹었더니 배가 많이 부르다


 

대단할 것은 없는데 눈길을 끈다





소재들, 색깔들.

보는 사람에게 창작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오늘 하루를 곰곰이 되짚어 본다.

11시 반에 일어나 12시까지 빈둥대다가 아점을 먹으면서 <<모니카와의 여름>>을 본다.

30분 정도 보다가 폰을 켜고 강호의 연락을 확인하다가

영화 몇 편을 다운 받다가 3시까지 <<모니카와의 여름>>을 마저 본다.

주인공 '모니카'의 에너지, 광기가 인상적이었다.

창고에서 고기를 훔치다가 걸려서 붙들린 와중에 다시 도망쳐서

남자 친구인 해리에게 달려가는 모니카. 고기를 뜯어먹던 모니카. 야생마.


끝내 도시로 돌아오나 도시에서 해리와의 삶을 불만족스러워하던 모니카, 결국 바람을 피우고

현장을 목격하던 해리. 그의 반응 샷만 나오고 시점 샷은 나오지 않은 것. 집 앞으로

겨우 기어나오나 끝내 모니카는 더 이상 보여주지 않고

집 밖으로 나오며 빈사 상태인 해리를 슬쩍 보다 담배를 피우고 길거리로 사라지는 바람남.




너무나 아름답다.

다시 오늘 일과로 돌아가면, 3시부터 4시 반 사이에 뭘 했는지 정확히 모르겠는데

(대강 그동안 다운 받았지만 결국 안 보고, 앞으로도 안 볼 것 같은 예술 영화들을

삭제했다)

4시 반에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와서 시나리오 구상을 조금 하다가

6시 경에 동아리방에 들어가서 후배와 피자를 먹고,

7시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딱히 게으름을 피운 건 아닌데 반나절이 훅 지나가버렸다.

단편 시나리오 구상도 어느 정도 된 것 같지만, 거의 기본 설정밖에 되어 있지 않다.

작업의 밀도가 낮다. 흠뻑 빠지고 싶다.




소변을 보고, 귀마개를 끼고, 내 할 일에 몰두하자.


작업을 많이 하다보면, 그 중에 다른 사람들 마음에 드는 것도 생길 것이다.

빨리 시나리오 작업을 끝내고, 그림을 많이 그리고 싶다.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늘 유념할 것. 단순히 특이한 캐릭터와 특이한 공간, 

분위기 등을 창조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독자는 '이야기'를 접할 때 어느 정도 기대하는 선이 있다.

'이야기'란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고, 그게 있어야 독자를 충족시킬 수 있다.

그럼 고고.

2014년 4월 28일 월요일

조금 씁쓸한 하루지만 (14.4.28)

정신을 붙들어본다.


마음이 어지러운 데는 여러 탓이 있을 것이다.

어제 밤새 소설 <<방황하는 칼날>>을 읽은 탓에 피로하기도 하고

1시반에 일어나고서 점심을 먹고, 샤워하고, 만화책 두 권을 보고나니 어느새 4시반이 되고,

해외축구 뉴스를 보고나니 5시가 훌쩍 넘어버리자 기분이 꿀꿀해졌을 것이다.


기분은 희한꾸리하지만 어제 밤을 새면서 적은 메모를 찬찬히 돌이켜보는 것으로 시작하고 싶다.

(꽤 많은 학생들이 열람실에서 공부하고 있다

봉준호와 소설들. 허버트 조지 웰스.

열람실 들어오자마자 방구 뀌고 싶다


나는 나 자신이 창조자로써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창작을 하기보다
나의 선배들을 의식하는 경향이 크다
봉준호와 델 토로
근데 그런 의식은 좋은 의식이다
신경 안 써도 된다

영감의 기름부음


어떻게 하다가 책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만화는 절로 손이 가는데 소설은 ...


개이버 뉴스를 켜는 순간 
영감의 기름부음이 끊어진다

폰을 두고 다녀야겠다)

어제 남긴 기록의 일부다. 시험기간이 끝났음에도 자연계 캠퍼스 지하에는 많은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인문계 캠퍼스 24시간 열람실에 비해 천장이 높고, 책상도 큼직하고 깨끗해서인지

책 읽고 공부하기에 훨씬 적합한 느낌이 들었다.

봉준호 얘기는 왜 했을까. 아마 내가 봉준호 감독이 대단하다고 느끼는 동시에 그로 인해 좌절감을 많이 느껴서였을 것이다.

가볍게 어릴 때 읽었던 누구누구의 책, 고등학교 때 읽은 무슨 책 이렇게 툭툭 내뱉는 말속에

그만의 어마어마한 내공이 느껴질 때 자괴감이 들곤 했다.

나는 그가 이 책을 읽은지 십수년이 지나서 읽고 있다 이런 자괴감.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를 박찬욱이 중학교 때 읽고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고 했을 때 느낀 대단하다는 생각과 좌절감.




하지만 그런 좌절감은 느낄 필요가 없다.

그들이 이미 느껴버려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을 그 감상들을 

나는 현재 이 순간에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간혹 이런 책 리뷰를 접할 때가 있다.

"때때로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질 때가 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 책을 읽을 당시의 두근거림과 조마조마함,

그리고 다 읽고난 그 순간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서늘함,

침을 꿀꺽 삼키게 만드는 먹먹함

을 다시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어제 메모에서 남긴 '영감의 기름 부음'이 바로 그런 한순간 몰입하고

끝내 확신을 얻는 경험 아니겠는가.

수용과 감상의 측면만이 아닌

창조와 생산의 측면에서도 그런 영감의 기름 부음을 경험하길 기원한다.


남은 메모들을 살펴본다.

책에 대한 거부감이라. 책은 만화보다 한권당 분량이 많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활자로 된 것이니 글자로 적힌 것을 시각적으로 상상하다보면

페이지는 몇십분째 그대로기 일쑤다.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뭔가 찾고 싶은 게 생기면 휴대폰을 켜고, 휴대폰을 켜다보면 애초의 목적은 잊은 채

네이버로 들어가 최신 뉴스를 쫙 훑는 것이다.

개이버는 정말 영감의 기름 부음을 끊어놓는다.


이 사진은 트렁크갤러리에서 4월 29일까지 열리고 있는 <낙타가 사막으로 간 까닭은?>의 일부이다. 작가의 이름은 김미루이고, 이렇게 사진을 올리는 것이 법에 저촉되는 일은 아닌지 모르겠다.

작가 분의 엉덩이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가져왔다.

그런데 정말 우연의 일치다.

한참 요셉 보이스의 얼굴과 작품을 포스팅하고 있는데 위 사진의 김미루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가 요셉 보이스라고 하니 말이다.


강한 여전사를 생각했었는데 전혀 아니라서 놀랐다. 실제 본인의 성격은 어떠한가?
성격은 내성적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잘 못하고 그런 적이 많다. 그래서 작품을 표현할 때 더 열정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멘토 또는 좋아하는 예술가는? 인생의 멘토는 아버지다.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다. 그는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라고 했는데 이 말을 좋아한다. 1974년 뉴욕 화랑에서 한 퍼포먼스 ‘코요테, 나는 미국을 사랑하고 미국은 나를 사랑한다'라는 퍼포먼스를 보고 영감을 얻어서 이번 작품을 하게 되었다. 요셉 보이스는 1974년 뉴욕 화랑에서 <코요테, '나는 미국을 사랑하고 미국은 나를 사랑한다'>라는 퍼포먼스를 했었는데, 그는 부상자 수송차를 타고 와서 갤러리에서 지팡이와 낡은 모포를 휘감고서는 코요테 한 마리와 함께 3일간 생활하다가 부상자 수송차를 타고 떠나는 것으로 퍼포먼스를 마무리 지었다. 그 외에 좋아하는 작가는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이다. 그의 "사랑 받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말을 좋아한다.
(그녀를 인터뷰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사전 검색을 해보니 김미루를 낸시랭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물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에둘러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혹시 라이벌이 있는가? 예술에서 라이벌은 있을 수 없다. 예술엔 경쟁이 없다.


그럼 같이 작업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가? 협력해서 작품을 해 보고 싶은 사람은 사운드나 영상 전문가들과 작업해 보고 싶다.


가끔 누드 퍼포먼스를 하니까 혹시 몸매 관리를 따로 하고 있나? 몸매 관리를 위해 특별히 하는 것은 없다. 운동은 달리기와 등산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요즘은 복싱을 시작했다. 

평소 생활은 무얼 하며 보내나? 요리를 즐겨한다. 그리고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친한 친구들을 만나기도 한다.


좌우명은 어떻게 되나? 즐거운 일을 하면서 살자. 열정이 없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을 잘 하려면 열정이 가는 일을 해야 하고 그래야만 영감을 전달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몸을 던져하는 것이므로 영감을 전달하고 싶다. 어린 시절 그림을 보고 운적이 있다. 사람들에게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싶다. 음악적인 요소를 영감에 싣고 싶다.









하하하


글의 도입부로 되돌아가면

오늘 잠깐 우울하고 몸이 움직이지 않았던 데는 개인적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라에 대한 아무런 긍지를 가질 수 없는 현실에 자꾸만 체념하게 되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다.

유우머를 잃지 말아야 혀.



이 풍진 세상에서 유우머를 잃지 말아야 혀.






그리고 펀치를 계속해서 날려줘야 혀. 그게 내가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명이 돼여.


글을 슬슬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나는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상한 세상에서 떨어져서 은둔 생활만 하면 외롭고 쓸쓸하다. 살아있다는 기분도 안 든다.

마음이 안 들면 안 드는 것을, 내 방식 대로 끈질기게 토하고 붙들고 물어뜯고.

이리, 하이에나 같은 느낌으로.

이리, 하이에나에게도 친구와 가족이 있겠지. 그들과 함께...


창작은 나의 분신을 여럿 만드는 일.

누에고치가 제 안에서 실을 뿜어내듯 끊임없이. 집요하게.